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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엔 의지만 있으면 뭐든 된다고 믿었습니다. 라면을 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라면 생각이 거의 나지 않게 됐습니다. 의지가 바뀐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바뀌었고, 그러자 주변 환경이 자연스럽게 따라 바뀌었습니다. 이게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뭔가 더 큰 원리가 작동하는 건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의지와 환경, 뭐가 더 중요한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역학(Epidemiology) 연구를 하는 전문가조차, 환자에게 샐러드를 권하면서 본인은 당분이 가득한 음료를 마셨다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입니다. 여기서 역학이란 특정 식품이나 생활 습관이 집단 전체의 건강과 수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대규모로 추적·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수만 명의 데이터를 놓고 "이 음식을 자주 먹은 사람들의 사망률이 몇 퍼센트 달라졌는가"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그런 최전선의 연구자조차 일상에서는 무너진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의지력(Willpower)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보면, 이건 결국 유한한 자원입니다. 퇴근 후에 "오늘은 샐러드 먹어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하루 종일 수십 번의 판단을 내린 전두엽은 이미 탈진 상태입니다. 의사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는 개념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의사 결정 피로란, 하루 동안 쌓인 크고 작은 선택들로 인해 뇌의 판단 능력이 점점 저하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뭔가 빠르고 자극적인 걸 향해 손이 가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최단 경로를 택하는 겁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논리는 꽤 정확합니다. 이어폰 없이 달리면서 "나는 건강하다"는 말을 속으로 되뇌기 시작했을 때, 뭔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뛰고 나서 마시는 물 한 잔이 생명수처럼 달게 느껴지고, 그날 저녁 장을 볼 때 음료수나 과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의지가 선행되자 환경이 따라오기 시작한 겁니다.
- 의지력은 하루 동안 소모되는 유한한 자원이다
- 퇴근 후 판단력이 떨어질 때 나쁜 식품 선택이 집중된다
- 세계적인 연구자도 일상에서 식습관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 의지의 방향이 바뀌면 환경도 자연스럽게 따라 바뀐다
식단 설계,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많은 분들이 "이건 좋은 음식, 이건 나쁜 음식"이라는 이분법으로 식단을 설계하려 합니다. 그러다 한 번 "나쁜 음식"을 먹으면 전부 망쳤다는 강박이 생기고, 결국 완전히 포기하게 됩니다. 이런 흑백 논리가 오히려 식단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실제로 적색육(Red Meat)을 예로 들면 이 흑백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납니다. 적색육에는 단백질, 철분, 비타민 B군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근력 유지와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반면 과잉 섭취 시 특정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코호트 연구(Cohort Study) 결과도 있습니다. 여기서 코호트 연구란, 같은 집단을 수년 또는 수십 년간 추적해서 식습관과 건강 결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장기 추적 연구 방식입니다. 즉, 적색육이 나쁜 게 아니라 콩류나 생선으로 일부 대체했을 때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게 핵심입니다. 출처: 하버드 T.H. 채 n 공중보건대학원 영양학 연구소에서도 접시의 절반을 채소와 과일로, 나머지를 통곡물과 단백질로 채우는 '건강한 접시(Healthy Eating Plate)' 모델을 제안하고 있는데, 특정 식품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비율과 대체의 관점입니다.
저도 라면을 아예 안 먹겠다는 결심을 수없이 세웠다가 깨진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일주일 21끼 중 한두 번 먹고 싶을 때 먹습니다. 대신 나머지 끼니에서 채소 비율을 의식적으로 높이는 방식을 씁니다. 음식에는 선악이 없고, 맥락과 대체가 있을 뿐이라는 걸 몸으로 배운 셈입니다. 푸드 매트릭스(Food Matrix)라는 개념도 여기서 등장하는데, 이는 식품 안에 있는 영양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해서 단일 영양소를 따로 먹을 때와 전혀 다른 효과를 낸다는 개념입니다. 당근에서 베타카로틴만 뽑아 캡슐로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연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자동화 시스템, 환경을 내 편으로 만들기
제가 직접 써봤는데, 환경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훨씬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장을 볼 때 과자와 음료수는 장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부터였습니다. 원재료 표시를 읽어보는 습관이 생겼고, 야채와 채소가 자연스럽게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달리기 후 물 한 잔이 그토록 달게 느껴진 경험이 몸의 기준점을 바꾸니 손이 가는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에는 기본값 효과(Default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선택을 해야 할 때 가장 쉽게 접근 가능한 옵션을 선택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눈앞에 견과류가 있으면 견과류를 먹고, 에너지 드링크 대신 블랙커피가 있으면 커피를 마시게 됩니다. 식품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이 원리를 활용해 가공식품을 가장 접근하기 쉬운 자리에 놓아왔습니다. 편의점 계산대 옆 초콜릿, 배달 앱의 메인 화면 구성이 그 예입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성인 비만 인구가 10억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개인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식품 환경 자체가 비만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자본주의 소비 사회로 접어들면서, 정제된 가공식품과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 광고와 유통망을 통해 우리의 기본값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초가공식품이란 설탕, 소금, 지방, 첨가물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자연식품의 형태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가공된 식품을 말합니다. 소아 비만과 소아 당뇨가 늘어나는 배경에도 이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활동량이 줄어드는 건 의지 부족이 아니라, 몸이 무거워지고 정서적으로 위축되는 악순환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동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냉장고에 씻어 놓은 채소를 항상 눈에 보이는 자리에, 과일을 식탁 위에, 견과류를 책상 서랍에 둡니다. 큰 결심 없이 그냥 손이 가는 자리에 건강한 것들이 있으면 됩니다. 거창한 식단표보다 냉동 블루베리 한 봉지, 현미밥 즉석 포장, 냉동 브로콜리가 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의지가 없어서 식단 관리를 못하는 건가요?
A. 제 경험상 의지 부족보다는 구조의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하루 종일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나면 뇌의 판단력이 소진되는데, 이를 의사 결정 피로라고 합니다. 하버드의 역학 연구자조차 같은 이유로 일상에서 무너진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을 만큼 이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환경을 바꾸는 게 먼저입니다.
Q. 영양제를 잘 챙겨 먹으면 식단 관리 안 해도 되지 않나요?
A. 영양제는 음식을 이길 수 없습니다. 베타카로틴을 캡슐로 복용한 실험에서 오히려 폐암 발생률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반면,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채소를 자주 먹은 그룹은 폐암 위험이 낮아졌습니다. 이는 식품 안에 있는 영양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푸드 매트릭스 효과 때문으로, 단일 성분만 분리해서 섭취했을 때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결론
정리하면, 식습관 실패의 원인을 본인 의지 탓으로만 돌리는 건 꽤 억울한 일입니다. 사회 구조 자체가 가공식품 소비를 기본값으로 설정해놓은 채로 돌아가고 있고, 우리 몸의 뇌 역시 지친 상태에서는 가장 쉬운 선택을 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부터 저는 의지를 쥐어짜는 대신 환경을 바꾸는 데 에너지를 썼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몸과 대화하는 습관이 먼저였고, 그게 장바구니를 바꿨고, 냉장고를 바꿨습니다. 완벽한 식단표가 아니라, 눈앞에 놓인 기본값을 하나씩 바꾸는 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식습관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면, 의지를 탓하기 전에 냉장고 안을 한 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